요즘 거의 한곡반복 중인 노래.. (해당 영상 제공자는 s비s 공식으로 알아요 그게 아니라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한파가 거듭되던 것도 잠시, 한 달 만에 날이 어느 정도 풀렸다. 영하의 기온은 영상으로 올라왔지만 초봄의 바람은 아직 매서웠다. 기온이 여전히 낮긴 하지만 이제 봄이라는 생각에 보일러를 껐는데 역시나 아직 겨울은 겨울이었다. 새벽의 한기에 석진이 잠에서 깨 너무나 익숙한 침대에서 일어나 보일러 온도를 높였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역시 익숙하다는 듯, 옆자리에 자고 있는 남자를 깨웠다.



애 아빠.”

…….”

애가 자두 먹고 싶대요.”



한밤중에 깨운다면 조금은 인상을 쓸 만도 한데 남자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게요.”



태형 또한 익숙하게 겉옷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어느새 서로가 서로에게 일상은 되고 습관이 됐다. 벌써 열 번도 넘은 새벽 외출이었다. 하지만 태형은 단 한번도 투정을 부리거나 짜증을 부린 적이 없었다.

새벽바람을 뚫고 양손에 자두를 가득 사온 태형은 당연한 수순처럼 도어락을 열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이제 새벽에 과일을 사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1시간도 넘게 걸리던 일이었지만 차로 20분정도 떨어진 곳의 마트가 24시간 한다는 걸 알아낸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새벽에는 차도 막히지 않고 마트에 사람도 없으니 더 빨리 갔다 올 수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와 두툼한 패딩을 벗자 따뜻한 공기가 태형을 감쌌다. 그리고 석진의 냄새가 났다. 같은 바디워시를 썼는데도 석진의 냄새는 좀 더 포근했다. 태형이 그새 잠든 석진의 옆에 앉았다. 곱게 감은 눈은 속눈썹이 부드러워 보였고 젤리처럼 도톰한 입술은 푹신해보였다. 정말 솜이불 같은 사람이었다. 석진의 주변 공기는 항상 따뜻했다. 체온도 높은 편이었지만 그를 둘러싼 분위기마저 그랬다. 그날 석진을 처음 봤을 때 자신의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던 것 같아 심장이 몽글몽글해졌다. 태형에게 석진은 그를 무장해제 시키고 그 안의 살갗을 품어주는 사람이었다. 매만진 석진의 볼이 말랑했다. 저 볼에,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저 입술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옆에 있는 것도 그동안 태형이 간신히 이뤄낸 것이었다.



사왔어요.”



입술을 맞추는 것 대신, 손가락 끝으로 그의 볼을 맞췄다.



언제 왔어요?”

방금.”

아침에 먹을래. 태형 씨도 더 자요.”



석진이 태형의 팔을 끌어 당겼다. 잠에 취해 제대로 눈도 못 뜬 석진은 아직 꿈결인 듯했다. 막무가내로 당긴 탓에 태형은 석진의 위로 엎어져, 하마터면 입술이 닿을 뻔했다. 잠결이라 다행이다. 태형은 석진이 혹 눌릴까 팔꿈치로 몸을 지지했다. 그리고 석진의 얼굴을 살폈다. 이 높이에서, 이 각도에서 석진을 보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페로몬에 취해 몸을 탐하기에만 바빠 석진의 얼굴을 눈에 담기 어려웠으니까. 태형은 천천히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석진이 당긴 대로 그의 옆에 누웠다. 비스듬히 누운 자세는 꼭 석진이 태형의 품안에 안겨있는 모습이었다. 태형은 조심스레 석진의 머리 아래에 팔을 넣어 그의 어깨를 안았다. 둘의 관계는 누구보다 빠르게 시작됐지만 그 누구보다 천천히 이뤄졌다. 당장 입을 맞추지 못해도 좋았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주워진 시간에 눈을 감았다.


잠에서 먼저 깬 것은 석진이었다. 매번 새벽에 사들고 오는 태형을 그냥 보내기가 그래, 언제부턴가 자고 가라고 했던 일이 이제는 아예 같은 침대를 공유하는 사이가 됐다. 말이야 같은 침대를 공유한다 하지만 꽤 널적해 남자가 둘이 눕기에 충분했고, 때문에 이렇게 자고 일어났을 때 바로 얼굴을 맞댈 일이 없었다. 특별히 어떤 스킨십도 텐션도 없는, 그야말로 같이 잠을 잘 뿐인 사이라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에 눈을 뜬 석진은 눈앞의 얼굴에 남았던 잠마저 확 달아났다. 어제 태형이 자두 사러 나간 이후로 기억이 없었다. 항상 그렇듯 기다리다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마주한 둘 사이에는 조금의 틈도 없었다. 조금만 고개를 튼다면 코가 맞닿을 거리였다. 코는 물론 입술까지도, 어쩌면 태형의 속눈썹이 석진의 눈꺼풀을 간지럽힐지도 모른다. 게다가 태형의 품에 안겨있는 모습도 그랬다. 엉켜진 다리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이러다 태형이 잠에서 깬다면 그건 그것대로 부끄러웠다. 석진은 자신의 가슴을 감쌌다. 맞닿은 상체를 따라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전해질 것 같았다.



일어났어요?”



석진은 그야말로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엉켜있던 다리를 뺐다. 확 빼기도 이상해보여서 살살 밀면서 빼는데, 어째 석진만 신경 쓰이는 듯했다. 태형은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두 사왔어요. 먹을래요?”



언제 사와서 언제 씻어놨는지 자두들은 뽀득뽀득 닦여 그릇에 담겨있었다. 석진이 대답하자 태형이 쟁반채로 침대로 와 앉았다. 태형은 자두의 껍질을 벗겨냈다. 충분히 익어 물렁한 자두는 껍질을 벗겨내자 손에 즙이 흘러내렸다. 석진이 자기가 벗겨 먹겠다고 손을 뻗자 태형이 아, 하라며 자두의 과육을 입에 넣어줬다.



이미 내 손에 다 묻었는데 뭘 또 석진 씨까지 묻혀요. 그냥 먹어요.”



거절할 수 없어 꾹 다물었던 입을 벌렸다.



태형 씨는 안 먹어요?”

석진 씨 다 먹어요. 이거 하우스 자두라 비싼 거래요.”



태형은 자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껍질 벗기는 일에 열중했다. 옆모습을 보고 있으니 속눈썹이 참 길었다. 윗 속눈썹도 그랬지만 아래까지 촘촘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다면 태형의 속눈썹도 닮을까? 석진은 태형이 먹여주는 자두를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있잖아요, 태형 씨.”

.”

오늘 나 병원 가는 날이거든요.”

알아요. 11시 예약이잖아요.”

같이 갈래요?”

?”



태형의 딸꾹질이 다시 시작됐다.







 V x JIN

샷건웨딩 shotgun wedding
05. 오해는 사랑을 싣고





항상 가는 병원에 갈 뿐인데 태형은 본인 집에 들려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먼저 출발했다. 그냥 입고 온 대로 가도 될 텐데, 아는 사람은커녕 모두 처음 보는 사람이면서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지 모를 일이었다. 본인이 굳이 그렇게 하겠다니 아무 말 안 했지만 말이다. 병원 앞에서 만난 태형은 아까 나갈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오히려 출근하는 것보다 더 차려입은 게 무슨 석진은 지금 우리가 상견례라도 가나 싶었다. 하지만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며 말을 삼켰다. 몇 번 오니 이제 아무렇지 않은 석진과 달리(사실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았지만) 태형은 병원 입구에서부터 표정이 굳어있었다.



손잡아도 돼요?”

왜요?”

조금 긴장 돼서요.”



태형이 석진에게 손을 펴보였다. 석진보다도 한 마디정도는 더 큰 손이었다. 절대 병원에 와서 긴장할 손이 아니었는데, 그 주인은 긴장된다니 조금 우스웠다. 아니 사실은, 조금 귀여웠다.



됐어요?”

.”



둘은 손을 꼭 맞잡고 문을 넘었다. 그 뒤는 별 것 없었다. 항상 했었던 진찰이었고 석진은 익숙하게 굴었지만 그 옆에서 태형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같이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태형은 그만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다. 태형이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자 당황한 석진은 두 눈만 깜빡였다. 자신도 듣고 울지 않았는데 이제는 훌쩍이기까지 했다. 태형을 보고 의사선생님이 티슈를 건네며 웃으니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창피하지는 않았다. 병원을 나서고도 둘은 손을 꼭 맞잡고 있었다. 태형은 주차장으로 와서도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석진은 잡은 손을 꾹 누르며 태형을 달랬다.



왜 울어요.”

조금 놀라서요.”

놀랐어요?”

나한테 말 안 해줬잖아요.”

뭐가요.”

쌍둥이라는 거요.”



태형의 말에 석진의 머리가 순간 멍해졌다. 언젠가 날 잡고 말해줘야지, 해줘야지 하다 벌써 시간이 꽤 흘러있었다. 이게 뭐라고 약간의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미루다보니 당연한 일처럼 잊어버린 석진이었다.



말하려고는 했는데.”

내가 더 매달릴까봐 그런 거예요? 일부러 말 안 해준 거예요?”

그건 아니에요.”



이제는 코끝까지 빨개진 태형이다. 석진이 그만 울라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차라리 제 차를 끌고 올 걸 하는 석진이다. 운전할 사람이 이렇게 우니 꼼짝없이 주차장에서 태형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은 죄도 있으니 할 말도 없었다.



그만 울어요.”

그럼 안아주세요.”

?”

사실 나 지금 자꾸 나쁜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안아주면 안 그럴게요.”



태형은 석진이 일부러 숨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변명이 될 뿐이니 석진은 말을 아꼈다. 석진이 손을 놓고 팔을 벌리려 하자 태형이 오히려 깍지를 끼며 손을 잡았다.



안아달라면서요?”

잡고 안을 수 있잖아요.”



어이가 없단 표정을 하며 석진이 태형의 어깨를 안았다. 연인들의 것과 달리 조금은 엉거주춤한 자세긴 했지만 둘은 주차장에서 한참을 안고 있었다. 태형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그리고 석진의 두근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 * *



 

오늘부터 마사지해요.”

뭘 해요?”

의사선생님이 그랬잖아요. 살이 틀 수 있으니까 매일 마사지 해주는 게 좋다고.”



이제 태형과 함께하는 주말은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걸 하는 건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 각자 책 읽고 게임하고 티비보고.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지만 그게 다였다. 뭔가를 함께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굳이 한다면, 밥을 함께 먹는 것. 그게 다였다. 그렇지만 함께 있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는 않았다. 조금은 단조로운 주말의 오후, 태형이 불쑥 가방에서 아로마 오일병을 꺼냈다.



나 살성 좋은데.”

해서 나쁠 건 없잖아요.”



태형은 태블릿으로 동영상까지 찾아가며 열심이었다. 간이 테이블에 태블릿을 올려놓은 태형이 석진을 침대에 앉혔다. 아무리 의사가 추천했다 해도 정말 할 줄은 몰랐는데, 일단 저렇게 열심히 하니 맞춰 줘야할 것 같았다. 태형을 울린 게 마음에 걸렸으니까. 석진이 아무 말 없이 따르자 태형은 양 손에 오일을 잔뜩 부었다. 방안은 라벤더 향으로 그득했다.



옷 위로 올려주세요.”



태형이 진지한 얼굴로 말하니 싫다고 할 수도 없었다. 석진은 침대에 바로 누워 니트를 위로 올렸다. 병원에서도 초음파를 위해 매번 하던 일인데도 자꾸만 니트 끝을 놓칠 뻔했다. 태형이 손가락 끝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일단 마사지 받는 사람의 뒤로 가서 앉으세요.]

영상의 지시에 따라 태형이 석진의 뒤로 가 앉았다. 엉거주춤 누워있던 석진은 그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그리고 둘은 영상의 장면이 바꾸자마자 굳어버렸다. 다름 아닌 태형의 다리 사이에 석진이 앉아야 하는 자세였다. 마치 백허그 같은, 아니 태형에게 몸을 맡긴 채로 그에게 누워야하니 백허그보다도 더 했다. 첫 관계 이후 이렇다한 스킨십이 없었던 두 사람은 영상이 3분이나 지나갈 때까지 정적 속에서 서로의 눈치만 봤다.



이렇게하라는 거죠?”

? , .”



먼저 움직인 건 석진이었다. 누워 있던 석진이 태형의 앞에 앉았다. 그의 귀가 새빨갛다. 태형이 석진의 자리만큼 다리를 벌리자 그 사이로 기대왔다. 태형의 어깨에 석진의 뒷머리가, 가슴엔 그의 등이 닿았다. 둘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영상은 어느새 저 혼자 10분쯤 재생되고 있었다.



안 해요?”

옷 좀.”



양 손에 오일이 잔뜩 묻은 태형이 허공에 손짓을 했다. 아까 올렸던 니트가 다시 배를 가리고 있었다. 힘이 없는 니트의 밑단은 손으로 잡지 않으면 자꾸만 말려 내려갔다. 석진이 니트의 아래를 잡아 올렸다. 자기 옷을 자기가 올리는 것인데도 석진은 꽤나 허둥댔다. 드러난 몸은 예쁘게 근육이 잡혀 있었다.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밝은 빛 아래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할게요.”

.”



이게 뭐라고. 둘은 무슨 의식이라도 치루는 사람들처럼 긴장해있었다. 태형의 손이 석진의 배를 감쌌다. 배꼽 주변을 엄지로 쓸고 양 손으로 둥글게 문질렀다. 손은 점점 위로 올라왔다. 배만 마사지하는 줄 알았는데 영상은 가슴까지도 이어졌다. 태형도 방금 막 찾은 영상이기에 하면서도 중간 중간 손이 멈칫했다. 태형이 그런데 석진은 더욱 죽을 맛이었다. 조금만 더 올려주세요. 태형의 말에 가슴까지 상의를 들어올렸다. 가슴이 드러나자 태형이 그 주변을 크게 문질렀다. 영상에 오메가 마사지라고 쓰여 있긴 했지만, 혹시 여성형 마사지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가슴까지. 하지만 정적을 깨고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들릴 정도였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문지르는데, 아까는 주변이었지만 이번에는 정확히 가슴 위였다. 오일에 젖은 손바닥이 유두를 문질렀다. 니트를 들어 올렸을 때부터 찬 공기에 바짝 선 유두였다. 딱히 가슴 애무를 받은 적은 없지만 그쪽이 꽤 예민한 석진이었다. 주변을 문지를 때는 괜찮았지만 직접적으로 유두에 자극이 오니 눈앞이 캄캄했다.



.”

아파요?”

아니, 아니에요.”



나른해 나온 신음에 오히려 놀라는 태형이었다. 괜찮다는 말에 태형이 다시 손이 움직였다. 스킨십도 스킨십이었지만 배 쪽보다는 가슴, 그것도 유두 쪽은 소리까지 자극적이었다. 가뜩이나 태형을 받아들이고 그의 페로몬에 약해진 석진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극까지 받으니 허리가 간지러웠다. 그리고 다른 곳도. 결국 석진은 두 눈을 꼭 감았다.



꽤 기네요.”

그러게요.”



영상에 집중한 태형은 석진의 표정이 어떤지 통 모르는 것 같았다. 드디어 유두에서 손이 떨어졌다. 살았다는 생각에 감고 있던 두 눈을 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약해져있는 옆구리를 쓸어내리며 얇은 허리가 태형의 손에 주물러졌다.



, 아읏!”



지금까지는 같이 영상을 보고 있던 탓에 그래도 그 다음 행동이 예측 갔는데, 두 눈을 감은 탓에 전혀 알지 못한 석진이다. 이렇게 허리를 쓸어내릴 줄이야. 알았더라면 이제 그만하자고 손을 잡았을 텐데.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아주 순수한 의도로 시작한 태형이었을 텐데 자신이 모두 망친 기분이었다. 아까야 나른함에 나온 신음인 척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명백하게 흥분에 들뜬 신음이었다. 그리고 석진과 함께 밤을 보냈던 태형이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걸 반증하듯, 소리와 함께 등 뒤가 딱딱해졌다.



이만하면 됐어요. , 씻고 올게요.”

, . . 저도 마저 할게요.”



석진이 퍼덕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태형도 함께 우왕좌왕하며 침대에 올려놓은 오일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흘린 오일을 마저 닦겠다는 건지, 아니면 뭘 마저 한다는 건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또 알아들은 사람처럼 석진은 그래요, 그럼하고 욕실로 도망치듯 뛰어 들어갔다.

큰 소리를 내며 닫힌 욕실 문을 따라 석진이 주저앉았다. 거울 속 모습이 엉망이었다. 상체는 오일로 번들거렸고 아래 또한 흠뻑 젖어있었다. 석진은 그대로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싶었다. 도저히 나가서 태형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 김석진 인생의 네 번째 흑역사가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욕실에서 혼자 자책의 시간을 갖고 모든걸 씻고 나온 석진은 샤워가운의 끈으로 허리를 동여맸다. 이제 어떻게 태형을 볼 것인가. 거울 앞의 석진은 여러 가지 버전을 생각했다. 그 중 제일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묻는 일이었다. 하지만 석진이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해도 태형의 반응이 문제였다. 자신의 신음에 단번에 빳빳해진 태형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려나. 석진은 세면대를 붙잡고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는, 욕실 서랍 안쪽에서 콘돔을 꺼내 샤워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였다. 욕실에서 나와 석진이 맞은 현실은 욕실 안에서 했던 석진의 생각과는 많이 달라있었다.




간다고요?”

생각해보니 월요일까지 해야 할 걸 가져와서요.”

…….”



혼자 욕실에서 A부터 Z까지 예상안과 답을 만들었던 것이 허무했다. 태형은 혼자 말끔하게 옷을 입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같이 퇴근하면서 당분간은 야근할 일 없다고 좋아하던 태형이었는데, 모든 상황이 갖춰졌는데 왜 피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좋다더니 그새 마음이 식었나? 하지만 같이 병원을 나와 펑펑 울었던 태형이었다. 그렇다면 마음은 진작 식었고 그냥 아이 때문에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건가? 이제 나쁜 생각은 석진이 하고 있었다. 자꾸만 나쁘게 생각한다더니, 정말 태형이 그러고 있는 걸까 두렵기도 했다.



석진 씨도 어서 자요. 피곤하잖아요.”

…….”

석진 씨?”



석진이 한참을 태형만 바라봤다. 아니 노려보는 게 옳을 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내쳐진 기분이 들었다. 혼자 흥분하고 혼자 식은 몸이 차가웠다. 어쩌면 자신이 빨리 욕실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태형일지도 모른다. 그 나름의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그래요. 잘 가요.”

 







5편 나눠서 올립니다!

그리고 안개꽃(@u_shn_u)님께서 샷건웨딩 그려주셔서 함께 올려요. 안개꽃님 감사합니다♥

들이대는 태형이랑 석진이랑 너무 찰떡인 것.. 넘 예뻐요ㅠㅠ



'연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뷔진] 샷건웨딩 完  (0) 2018.02.26
[뷔진] 샷건웨딩 05-2 完  (4) 2018.01.21
[뷔진] 샷건웨딩 04  (4) 2018.01.17
[뷔진] 샷건웨딩 03  (3) 2018.01.14
[뷔진] 샷건웨딩 02  (1) 2017.07.1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