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진은 지금 세상에서 누구보다 진지했다. 


모두가 퇴근 준비중인 교무실에 가장 진지한 얼굴로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었다.'석진쌤 요새 고민있으시대?' '몰라.' 주위의 선생님들이 수근거려도 석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열심히 마우스 휠을 내렸다. 석진이 한숨을 푹 쉬자 방탄보습학원 교무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무언가 큰일이 있으신 게 틀림없어. 다들 위로의 시선을 던지며 교무실을 떠났다.



'오리젠 퍼피랑 나우 퍼피 중에 뭘 사지..'



세상 모든 고민 다 짊어진 얼굴을 한 석진의 노트북 화면에는 강아지 사료가 가득했다.








학원강사와 학원생의 주종관계





석진이 강아지를 주운 것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날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한동안 습하고 뜨거웠던 날씨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석진은 창 밖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며 아.. 빨래 괜히 널고 왔네.. 하고 낮에 널고 온 빨래를 생각했다. 퇴근 준비로 분주한 교무실에서 석진만 멍하니 턱을 괴고 있었다.



"선생님! 밖에 강아지가 묶여 있어요!"



모두 퇴근 준비를 하던 와중에 물에 빠진 생쥐마냥 흠뻑 젖은 지민이 강아지 한마리를 안고는 교무실로 들어왔다. 석진은 그저 힐끔 시선을 두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머나, 웬 강아지야."

"학원 앞에 묶여있는데 아무리 있어도 주인이 안 나타나요."

"세상에.. 누가 버리고 갔나보네."



다들 한마디씩 덧붙였지만 그때도 석진은 다시 돌려야 할 빨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본가에 있는 짱구 외에는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석진이었고 지금은 흠뻑 젖은 저 강아지 마냥 이 폭우 속에 젖어있을 빨래가 제일 걱정이었다. 또 빨래를 돌려야하나, 하는 생각에 석진만 창 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석진쌤이 데려가면 되겠다!"

"..어?"



가방을 들고 제일 먼저 교무실이 나서던 석진이 지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선생님과 학생들도 그러면 되겠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뭔가 나를 빼고 내 일이 결정된 것 같은데..



"나? 나보고 데려가라고?"

"네!"



지민이 석진의 앞에 안고 있던 강아지를 들이대며 환하게 웃었다. 석진은 얼떨결에 품에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강아지.. 였지만 강아지라기엔 이미 크기가 짱구보다도 컸다. 게다가 흠뻑 젖어 버림받은 주제에 뭐가 신나는지 얼굴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왜?"

"헐.. 쌤.. 지금 강아지가 주인한테 버림받아 폭우 속에 떨고 있는데.." 



석진은 아니 내 집에 데려가는 걸 왜 나를 빼고 결정해! 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이미 뱉은 한마디에 다들 석진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안처럼 쳐다봤다. 아니, 내가, 뭐, 대체, 뭐.



"우리집은 안돼요.. 애완동물 금지라서.."

"저도. 게다가 애들도 있고."

"저도 엄마한테 혼나요!"

"그러니까 석진 쌤♡"






지민아 선생님 눈 보고 다시 얘기해보자.




#




떠맡기듯 데려온 강아지는 석진이 혼자 지내는 오피스텔이 꽉차게 느껴지게 했다. 아직은 어려서 괜찮지만 곧 성견이 되면 이 오피스텔에서 키우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임보하는걸로 하고 주인을 찾아줘야겠다.. 하고 석진은 드라이기로 흠뻑 젖은 강아지를 말리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름은 지어줄까.."



석진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건지 석진의 무릎에 얌전히 앉아있던 강아지가 고개를 들며 눈을 반짝였다.



"율무?"

"...."



진짜 알아듣나. 부른 이름이 맘에 안드는지 강아지는 아우우, 하고 작게 하울링하며 고개를 숙였다. 석진은 그 이후로도 침침, 또순이, 호비, 모니, 순심이 등 여러 이름을 불렀지만 반응은 없었다.



"어.. 태태?"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이름과 애칭을 말하던 석진이 학원에서 제일 똥꼬발랄한 강아지같은 학생인 태형을 떠올리며 꺼냈다. 이름은 김태형인데 석진을 제외한 모두가 태태라고 불렀다. 이것도 아니면 그냥 똥개라고 부르리라. 하고 마음 먹고 부른 이름이었는데 그제서야 강아지는 고개를 들며 저를 쳐다봤다.



"태태? 태태야?"



정말 맘에 든 건지, 아님 원래 이름이 태태였던 건지 태태가 석진의 얼굴을 핥아왔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 맥주 한캔하는 게 유일한 낙이었던 석진의 일상에 태태는 금새 스며들었다. 잠깐 임보한다던 석진이었지만 애교 많은 태태는 어느새 석진의 애완견이 된 지 오래였다. 석진은 하루 종일 태태의 간식, 장난감 사이트를 눈팅했고 요즘은 아예 사료를 떠나서 화식, 생식으로 갈아타 번거롭지만 매일 태태의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태태야, 아빠 왔어!"




석진의 목소리가 들리자 석진의 침대방에 있던 태태가 달려 나와 석진을 반겼다.



"아이구~ 집에 혼자 있었어~ 혼자 심심했어~ 우리 태태. 아빠가 간식 사왔지!"



석진은 저에게 배를 깐 태태를 쓰다듬고 안았다. 이제 한품에 안기엔 조금 버거웠지만 태태는 석진에게 안기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총명한 태태는 쓰담쓰담? 이라는 단어만 꺼내면 바로 석진의 옆으로 다가와 만져달라며 머리를 들이댔다.


애교는 어찌나 많고 사람을 어찌나 따르는지 데려온 첫날 따로 거실에서 재우려 하자 하도 낑낑대서 결국 태태는 석진의 침대도 차지했다. 이렇게 예쁜 애를 대체 누가 버린거지. 학원에서는 그렇게 차갑던 석진이 이렇게 팔불출이 될 줄은 학원 선생님도, 학원생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





어느새 날은 무더워져 학교는 방학에 들어갔고 석진의 학원 또한 잠깐의 방학을 가졌다. 오랜만에 휴가에 다들 어디 놀러가네 저기 놀러가네 했지만 석진은 집에서 에어컨 틀고 맥주 한잔하며 영화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태태를 두고 본가도 못가는 와중에 멀리 여행가는 건 지금의 석진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태야, 오늘 아빠 친구 올꺼야. 그러니까 얌전히 있자. 알았지?"



폭염에 에어컨 아래에 누워있던 석진은 제 옆에 있는 태태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석진은 오랜만에 휴가에 친한 동생인 윤기를 집으로 초대했다. 




[윤기야 형 집에 와라]

[왜요]

[형 집에 강아지 있어]

[근데 왜요]

[형이랑 영화보자]

[제가 왜요]

[오리고기 콜?]

[콜]



초대라기보단 와달라고 구걸했다는 쪽이 가까웠지만... 석진이 오리고기를 꺼내 요리하기 시작하자 태태는 제 것인 줄 알고 옆에 앉아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안돼. 이건 태태꺼 아니구 아빠랑 친구 거야."



요새 석진이 느낀거지만 태태는 천재가 틀림이 없다. 지금도 제 것이 아니라니까 금새 꼬리를 내리고 귀를 추욱 내렸다. 그리고는 터벅 터벅 석진의 침대 방으로 들어갔다. 석진은 조금 미안해졌지만 띵동하고 눌리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으로 몸을 돌렸다.



"왔어?"

"여기 맥주요."

"이야~ 민윤기.."



석진이 문을 열자 반짝이는 금발 머리를 한 윤기가 맥주를 보였다. 이 친구 센스봐. 이야~ 하며 석진이 윤기를 집안으로 들였다. 덥지? 하는 말에 윤기는 괜찮아요. 형 집 시원하네. 하고 신발을 벗으며 두리번 거렸다.



"형, 키운다던 강아지는?"

"아~ 태태! 지금 방에 있어. 얘가 원래 사람 오면 반기는데.. 넌 사람이 아닌가봐."

"근데 어디서 타는 냄새 안나요?"

"형의 마음?"



윤기를 반기던 석진은 후라이팬에 올려놓은 오리고기 주물럭을 생각했다. 아, 맞다! 하고는 부엌 쪽으로 달려가 후라이팬을 잡았다. 냉장고에 맥주캔을 넣던 윤기는 방에 들어가 봐도 돼요? 했고 석진은 어. 태태 착해. 안 물어! 하고 오리고기 주물럭에 집중했다. 티는 안냈지만 강아지를 좋아하던 윤기는 기대감에 부풀어 석진의 침대 방문을 열었다. 윤기는 방문을 열었다. 윤기는.. 열었다. 열었는데...





"뭐."



방 안 침대에는 전라의 건장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윤기는 방 안을 한 번, 부엌에 있는 석진을 다시 한 번 번갈아 봤다. 다시 눈을 비비고 방안을 봐도 강아지는커녕 꼬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형.. 애완견이라면서요..



"형 강아지라면서요..?"

"응! 우리 태태가 커보여도 아직 어려! 애기야!"



확실히 침대의 남자는 덩치는 컸지만 아직 앳된 티가 났다. 아직 얼굴에 솜털이 있는게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아.. 어리구나.. 형이 키운다던 애완견이 얘구나..."

"우리 태태가 얼마나 애교가 많은데~ 아주 밤에 잠을 못 자! 놀아주느라 힘들어."





"아.. 그래요.."


고등학생의 어린 애완견. 윤기는 아무리 석진이 친한 형이라지만 그의 성적 취향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존중하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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