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건웨딩은 블로그에 올라온 연재분보다 포스타입에 올린 버전으로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맞춤법 등이 수정돼 읽으시기 더 편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https://jin-doing.postype.com/post/1656799








좆 됐다.

석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삼십 년 인생사에서 세 번의 좆 됨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40점 맞은 시험지를 90점으로 거짓말 친 후에 갈기 갈기 찢어 변기에 내렸다가 점수 부분만 고대로 떠오르는 바람에 죽도록 혼났던 초등학교 5학년 때이고, 두 번째는 친구와 문자로 담임 욕을 하던 것을 실수로 담임에게 보내버린 고등학교 2학년 때이며, 그리고 세 번째는 낯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바로 지금이었다.

낯선 천장과 낯익은 남자 그리고 허벅지에 흐르는……. 석진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에 다시금 눈을 감고 싶었다. 꿈이라기엔 모든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고 어제의 기억이 뚜렷했다. 난감한 상황이 오면 드라마 주인공들은 잘도 기절하던데. 기절하고 싶어 하면 할 수록 더 또렷해지는 정신에 울고만 싶었다. 석진은 초등학교 때 달란트 시장 때문에 갔던 것이 전부인 신앙심으로 두 손을 고이 모았다. 주님, 제발 제 옆에 놈이 기억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석진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엔 신앙심이 너무 모자랐다.


"일어났어요?"
"……."
"아침 먹을래요? 보통 뭐 먹어요?"


락스요.








V x JIN
샷건웨딩 shotgun wedding
: 속도위반 결혼







김석진과 김태형은 사내의 유명 인사였다. 이 둘이 유명한 이유는 세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얼굴이요, 두 번째는 비주얼이요, 세 번째는 와꾸였다. 비록 쓰는 층도 다르고 하는 업무도 달랐지만 한 명은 4층의 걔였고, 한 명은 12층의 걔로 불렸다. 석진은 12층에 걔 알아? 하면 잘 모르는데요.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했지만 사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같은 부서인 지민의 친구였기 때문인데, 지민과의 하루 대화 중 7할이 태형이었다. 별 관심 없는 주제였지만 딱히 할 얘기도 없으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쉬는 시간까지 쓸데없는 업무 얘기로 골치 아픈 것보다야. 그러나 많은 카테고리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석진은 항상 심드렁 할 뿐이었다.


그런 태형의 이미지가 얼마 전 석진이 떠맡게 된 업무로 인해 90도 바뀌었다. 그 프로젝트는 하필 "4층의 걔'네 부서의 뒤처리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태형이 담당하던 것이었다. 타부서 건을 뒤처리하게 된 것도 찜찜한데 온갖 오타와 수정사항으로 석진은 가뜩이나 하고 싶지 않은 야근을 사흘 내내 매달려야 했다.

그 마지막 사흘 째. 부서에 홀로 남아 야근하는 석진에게 먼저 퇴근한 지민이 카톡을 보내왔다. 형 4층에 김태형 말인데요. 걔 어때요? 하고 한 줄. 사실 따지자면 태형이 특별히 잘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은 석진이 클럽에서 테이블까지 잡고 놀기로 한 불금이었다. 단조로운 카톡 한 줄은 불금을 야근으로 반납해야 하는 원인인 김태형의 이미지가 90도 꺾이는 반환점이 됐다. 무관심에서 비호감으로. 석진은 차분하게 잠금을 해제하고 답장을 썼다. 응, 존나 별로.


그리고 지금 석진의 눈 앞에는 존나 별로인 그 남자가 누워있었다. 석진의 얼굴은 누렇게 떴고 커튼 너머로 들어오는 태양빛마저 누랬지만 남자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환했다.



#



존나 별로 사건 이후로 석진은 지민에게 더이상 태형의 이름을 들을 수 없었다. 아쉬운 것도 아니고 별 관심도 없었지만 매일 듣던 이름이 사라지니 궁금해 묻자, 지민은 웬 자다가 봉창 두들기냐는 표정으로 차여서 요즘 조용해요, 로 일축했다. 아무튼 석진과 태형의 인연은 별것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 석진은 제 옆에 누워있는 태형을 보며 생각했다. 사건은 단순했다. 히트 사이클의 오메가와 밀실 그리고 알파.


반복되는 야근에 석진은 그만 히트사이클 주기를 잊어버렸고 그대로 회사에서 터지고 말았다. 요근래 몸이 무겁다했더니 곧 히트사이클이란걸 잊어버린 것이었다. 아래서부터 열감이 올라와 금세 목은 물론 귀까지 발갛게 달아올랐다. 녹진해진 몸은 곧 쓰러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부서엔 혼자 남아있었지만 혹시라도 누가 온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젠장할. 속으로 욕을 삼키며 석진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기 바쁜 금요 야근에 휴게실에 올 사람은 없을 테니까. 히트사이클이라 한들 알파와 접촉만 없다면 몸살정도로 끝날 일이니 석진은 휴게실에서 사람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릴 요양이었다. 간신히 휴게실로 온 석진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문을 잠갔다. 불이 꺼진 휴게실은 컴컴했고, 아무도 없는 듯 했다. 안심이 되자 다리가 풀렸고 그대로 주저앉아 서늘한 철문에 몸을 기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민감하게 느껴졌다. 분명 혼자 있는데. 설마 문이 열려있나, 하고 석진은 다시 다리에 힘을 줘 떨리는 손으로 문을 살폈다.



"석진 씨?"



석진은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다시 그대로 주저앉았다. 망할. 누가 있을 줄이야. 회사에서 항상 흐트러짐 없던 석진이기에 이런 모습을 누구에게 보인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아니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 아파요? 하고 다가오는 한 걸음 하나하나에 반응해 뒤가 젖어왔다. 전체의 8할이 베타, 고작 2할만이 오메가-알파인 세상에서 운도 더럽게 없지. 석진은 스스로를 자조했다. 심지어 상대는 우성 알파였고, 하필이면 또 김태형이었다. 



"아…. 히트 사이클이에요?"



평소 같으면 별 와닿지도 않을 목소리가 왜 이렇게 달디 단지. 망할 호르몬. 망할 페로몬. 석진은 자꾸만 젖어오는 뒤가 간지러워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제가 나갈게요. 그러니까 제가 알파라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파인 게 다 느껴지는데. 석진은 제가 문 앞을 막고 있는 것은 잊고채 아까부터 어쩔 줄 몰라 오도 가도 못하는 태형에 짜증이 났다.



"가려면 빨리 가요."

"아니 그게."

"뭐요."

"놔줘야 가죠."



석진은 그제야 제가 태형의 옷깃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사이엔 정적이 흘렀다. 잠깐의 침묵. 그 묘한 공기속에서 둘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입술을 부볐다. 망할 호르몬. 망할 페로몬. 석진은 제 품의 남자를 보며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필이면 김태형이었지만 다행히도 잘생겼으니까. 


페로몬에 들떠 히트싸이클까지 겹친 정사는 회사 휴게실에서 석진의 차로 그리고 태형의 오피스텔까지 이어졌다. 사고가 녹아내릴 것처럼 머리가 끈적끈적해 서로를 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여름밤의 꿈이기에는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이제 그만하라며 울며 애원하던 어제를 잊고 싶지만 여기저기 쑤시는 몸이 반증했다. 다행히도 김태형이라 생각했던 어제와 하필이면 김태형이냐는 오늘이 서로의 뺨을 쳐댔다. 석진은 제 맞은편에 앉아 아침 댓바람부터 김치찌개에 오첩 반상을 차리는 태형을 보며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입에 맞아요?"
"우리 콘돔했어요?"



태형이 먼저 한 술을 뜨는 석진에게 물었으나 오는 답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태형은 당황한 얼굴로 어젯밤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어제… 그러니까…. 석진 씨가 저를 갑자기 막 그래서… 어…."
"그래서. 우리 안 했죠."
"안 한게 아니라 못 한거죠."




태형의 말에 석진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반 공기가 줄 때까지 석진은 고개를 들지 않고 밥만 먹었다. 바로 앞에 앉은 석진이 그러니 태형은 저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자꾸만 눈치가 보였다.



"사고죠."
"네?"
"사고라고요 우리."



그래도 밥이 입에는 맞는지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석진이 아직 반도 못 먹은 태형에게 말했다.



"사후 피임약은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
"잘 먹었고, 어… 어제도 뭐 잘…."



딱히 어제의 일을 뭐라 정의할 수 없어 석진은 말 끝을 흐렸다. 그리고 제가 먹은 것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제 발 저린 사람마냥 빠르게 태형의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엑셀을 끝까지 밟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석진은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원나잇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제정신이 아닌 새에 치뤄진 흑역사에 석진의 제정신이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혹시 소문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물론 지민까지도 태형의 태 자도 꺼내지 않았다. 한 이 주는 흑역사의 늪에서 현타의 반복이었으나 석진도 이제는 모든 걸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태형과 마주칠까 회사 식당도 안 가던 석진이었는데 이제는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태형을 마주쳐도 아무렇지 않아 했다. 흑역사의 계절이 가고 다시 야근의 계절이 왔다. 석진은 새 프로젝트를 맡아 지민과 이틀이나 회사를 철야로 지새웠다. 또 저번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석진은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싸이클 주기를 확인하고, 날에 맞게 연차까지 신청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주기가 돌아와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억제제를 먹어도 월月의 한 번은 몸이 무거워 움직이기가 힘들어야 정상인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석진은 침대에서 일어나 어플을 켜 사이클 주기를 다시 확인했다. 이렇게 가벼울 리가 없는데. 다시 확인하고 확인해도 분명 오늘인데. 항상 주기가 일정했던 석진이기에 더 의아했다. 그리고 그때, 잊고 있던 기억이 석진의 뒤통수를 빡 때렸다. 설마했던 흑역사가 떠올랐다. 석진은 아니야. 그럴 리가 하며 실내화를 신은 채로 집 앞 약국으로 갔다. 막 자다 깬 게 분명한 차림새로 약사를 잡고 약국에 있는 테스트기를 종류별로 다섯 개나 사왔다.


-사후피임약은 내가 알아서 먹을게요.


분명 그렇게 말하고 태형의 집을 나온 석진이었건만 당일은 주말이라 병원에 가 처방을 받지 못했고, 그 다음날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오디트 준비로 반차나 연차를 낼 틈이 없었다. 야근의 수레바퀴 속에서 석진은 태형의 시야를 피해 다닐 궁리는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처방을 받으러 가는 것은 잊고만 것이다.

히트 사이클의 오메가와 우성 알파.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졌지만 석진은 그 0.00001 프로의 확률을 떠올렸다. 뭐 요즘 사회에서 미혼부니 미혼모니 하는 것은 결격사유도 안 됐지만, 하필이면 상대가…. 하필이면 원나잇이라니…! 테스트기의 결과를 기다리는 5분이 500년처럼 더디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확히 5분 후. 아침에 틀어놨던 TV에서 교양 프로그램 <클래식 나들이>가 흘러나왔다. 첫 곡은 베토벤의 5번 교향곡. 운명이었다.




아마 오부작일 것 같아요..

아마 격주 연재할 것 같아요...

트위터썰 중 알오물 러트+히트=임신 썰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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