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태가 이상했다.


평소라면 석진의 발걸음 소리에 뛰어 나와 꼬리를 흔들었을텐데 아무리 불러도 침대 밑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석진이 손을 넣어서 앞 발을 잡아당겨도 끼잉 끼잉하며 꼼짝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석진은 병원을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태태는 오늘도 석진의 침대 밑에 있었다. 나오지 않겠다는 애를 가까스로 어르고 달래 차에 태워 병원에 왔다.


병원이란건 어떻게 알았는지 힘을 준 채로 차에서 내리기를 거부하는 태태를 겨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 진료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석진은 이미 진이 빠졌다. 어디가 크게 아픈걸까. 석진은 초조함에 아래 입술을 깨물었다.






"발정기네요."

"네?"

"중성화 날짜 잡죠."






수의사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태가 진료실을 도망쳤다.








학원강사와 학원생의 주종관계







마냥 아기인줄 알았던 태태가 발정기라니. 석진은 당황스러웠지만 내 새끼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니 뿌듯했다. 중성화 수술 날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자 한시름 놓이는 듯 했다. 어디 크게 아픈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석진과 달리 태태는 병원에서 다녀온 이후로 식음을 전폐했다. 병원에서 중성화수술까지 잘 먹이라고 했는데! 태태는 화식에 생식에 수제간식까지 거부했다. 대체 뭐가 문제야.. 석진은 그렇게 잘 먹던 태태가 도통 먹지 못하니 제가 먹지 못하는 것처럼 속이 상했다.


석진은 학원 쌤을 통해 최고 기호성을 보인다는 강아지 간식을 구할 수 있었다. 수입이 막힌 이후로 직구가 아니면 힘들었는데. 기말고사도 끝나고 한가해져 석진은 오랜만에 집에 일찍가기로 맘 먹었다. 저녁 수업이 취소된 것도 있었고 빨리 태태에게 간식을 전해주고 싶었다. 석진은 부드럽게 엑셀을 밟아 제 오피스텔에 들어섰다. 평소처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데, 석진의 시선이 LED창에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가 석진이 사는 층에 멈춰 있었다.






"……."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각 층에는 두 호수 밖에 없었고 석진의 앞 집은 비어 있었다. 무언가 꺼림찍했지만... 석진은 일단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층 수가 올라갈 수록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심장이 뛰었다. 엘리베이터는 금세 멈춰 섰고 자동문이 열리는 때 였다. 띠리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석진의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였다. 그리고 현관문이 닫혔다. 석진은 큰 눈을 껌뻑이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수 없었다. 112를 눌러야 하나. 그런데 상대는 석진이 아는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잘 아는, 아까까지만해도 얼굴 맞댔던, 학원생인 김태형이었다.








#








석진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태형은 도어락 키를 갖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두렵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단 제 집으로 들어가 태형에게 묻는게 우선이었다. 현관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닫혔다.






"김태형!"






석진은 신발 벗는 것도 잊은 채로 집안으로 들어와 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14평 정도의 작은 투룸에 태형이 숨을 곳은 없었다. 그런데 없었다. 굳게 닫힌 베란다 문을 열어 보일러 실까지 열어보아도 아무데도 없었다. 내가 헛 것을 봤나? 그럴리가. 석진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상했다. 집이 너무나 조용했다. 석진은 몸을 숙여 침대 아래를 보았다. 태태가 있었다.






"태태야, 누가 오지 않았어?"






평소라면 침대 밖으로는 나오진 않아도 낑낑대며 저를 반길 태태가 눈치라도 보는 듯 했다. 평소라면, 석진도 그냥 일어섰을 것이다. 그런데 태태가 깔고 앉아 있는 옷이 어딘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석진은 팔을 뻗어 그 옷을 잡았다. 비켜봐, 하고 태태와 한참을 씨름하고 옷을 잡아 뺄 수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했고, 낯설었다. 그 옷은 여기에 있으면 안되는 옷이었다.


김태형

태형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교복이었다.


석진은 그 교복을 손에 든 채로 욕실의 커텐을 열어 욕조 안은 물론 세탁기 안, 옷장 하나 하나를 열었다. 혹시나 하고 침대 이불도 당겼지만 어디에도 태형은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석진은 거실의 소파에 풀썩 앉아 고개를 젖힌 채로 태형의 교복을 들어 보았다. 분명 태형이 들어왔고 태형의 교복이 있는데 대체 어디로 사라진거지. 하아, 석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교복을 내렸을 때, 석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악!"

"쌔, 쌤! 일단 진정하ㅅ…"






자신이 이렇게 하이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는 석진도 처음 알았다. 태형은 제 침대방에서 침대 시트로 아래만 가린 채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방에는 침대와 붙박이 장만 있었다. 아까도 봤지만 절대 태형이 숨어 있을 곳이 없었고,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디에?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석진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목이 쉬는 것도 잊은 채 비명을 질렀다. 태형의 머리에 긴 귀가 있었다. 그러니까, 강아지의 귀와 같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 귀는 태태의 것과 똑같았다.







"쌤, 제가 다 설명할게요. 그러니까 이게요.."






제 집을 침입한 알몸의 강아지 귀의 남자.

석진은 부엌으로 달려가 두께가 두꺼운 주물 후라이팬을 꺼내 들었다.






"아, 쌤! 쌤!!"

"이 변태새끼야!!!"






석진은 휘둘렀고, 태형은 기절했다.








#







태형이 아는 석진의 귀가시간은 9시였다. 항상 자신의 수업이 끝나고 한 시간 정도 뒤에나 오는 석진이었다. 태형은 여유롭게 피시방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휴대폰이 시끄럽게 알람을 연속으로 울어댔다. 지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같은 메시지가 열 통, 스무 통 반복해서 울렸다. 읽을 때까지 백 통이라도 보낼 기세였다. 


[비상사태 석진쌤 퇴근함]


제가 알기로 석진의 수업은 아직 두 타임이나 더 남아 있었다. 그런데 퇴근이라니. 태형은 파티원들에게 욕을 먹으며 급히 하고 있던 오버워치를 로그아웃하고 책가방을 들쳐 맨 채로 택시를 잡았다. 아이, 망했다. 석진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 허겁지겁 도착한 집에는 다행히 아직 석진이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는 그때였다.


문이 열렸다. 태태의 모습으로 침대 아래에 숨어있던 태형은 미친 사람처럼 제 이름을 부르며 쥐잡듯 집안을 뒤지는 석진에 머리를 굴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래, 이미 다 들켰는데 나가서 설명하자. 설명하면 될 거야! 태형은 침대 아래서 기어 나왔다. 제 옷은 석진이 들고 갔으니 태형은 어쩔 수 없이 침대 시트로 몸을 가렸다. 언젠가는 설명해야 했지만 태형이 생각한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쉬며 태형은 방을 나섰다.


그리고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누군가 제 귀를 잡아 당기는 느낌에서였다. 아파요.. 하고 나지막히 말하는데 목이 뻐근했다. 아… 아무리 반은 개라지만 사람 모습일 때 목줄이라니.






"이거 뭐야."






눈을 떴을 때 석진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태형을 보고 있었다. 태형이 그런 석진을 빤히 바라보자 석진이 태형의 귀를 세게 잡아 당겼다. 석진은 태형이 강아지 귀 머리띠를 한 줄 알았다. 전라에 동물 귀 머리띠. 석진이 알기로 그런 모양새는 변태밖에 없었다. 기절한 태형을 끌고 와 혹시 몰라 목줄을 매어 침대 헤드에 묶었다. 얌전히 태형이 묶이자 (애초에 기절해 있었다.) 어느정도 진정이 된 석진은 그제서야 정상적인 사고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태태가 안보였다. 태태가 사라지고 나타난 강아지 귀의 태형. 석진은 일단 이 머리띠부터 벗겨야겠다 하고 잡아 당기는데, 전혀 벗겨지지 않았다. 아니, 이건 가짜가 아니였다. 따뜻했고, 안에 귓바퀴도 있었다. 태태의 귀청소를 해줄 때 봤던 그 귀였다. 석진은 멍하니 태형의 귀를 잡아 당겼다. 세상에, 석진은 이대로 기절하고 싶어졌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리 속에 맴돌았다. 말도 안 돼, 설마. 이게 뭐 란마1/2이야?






"이거, 뭐냐고."

"아, 아파요! 귀, 귀 잖아요!"

"이게 왜 달려있어."

"…그게요. 숨겨야하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니, 그전에 너가 왜 우리집에 있어?"

"…그러니까."

"그것보다 왜 다 벗고 있어? 남의 집에?"

"…어…"

"태태는 어디갔고!"






석진의 물음에 우물쭈물하던 태형이 저를 가르켰다.






"여기요."






태형의 말에 석진은 아까의 후라이팬을 높게 들었다.






"아니 이새끼가 이 상황에 지금.."

"제가 태태 맞아요!"

"……."

"여, 여기엔 사정이 있어요, 쌤!"






후라이팬이 휘둘러 졌다.






"치, 침대 아래에 핑크 딜도!"






후라이팬이 태형의 코 앞에서 멈춰섰다.






"침대 아래 박스에 핑크 딜도 있잖아요?"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봤으니까요."

"아, 아니 그건 내 꺼가 아니라…"

"나, 다 봤는데."

"…뭘?"






석진은 말하고 후회했다. 되묻지 말고 잡아떼야 했는데. 아니, 한편으론 확실히 하고 싶었다. 설마, 아닐 거야. 묻는 석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쌤이 그 때, 방에서 나 내보냈잖아요. 근데 문은 안 닫았고."






석진의 손에 든 후라이팬이 힘없이 떨어지자 태형이 그제서야 씩하고 웃었다.








"쌤이 혼자 하는 거 다 봤다구요."

"……."

"아, 젤은 이 서랍에 들어있죠."

"……."

"2단으로는 못 느낀다면서 3단까지 올렸잖아요."

"……."






석진은 태형의 말에 망연자실했고, 말도 안 되는 현실에 기절하고 싶었다.






"와, 나 참느라 죽는 줄."






아니, 당장 접싯물에 코를 박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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