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너를 알 수는 없지만 

너와 난 서로 많이 다르지만 

시간이 점점 흘러간 그만큼 

조금씩 이끌려 너에게 






뭐가 문제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상황도 완벽하고, 둘의 관계성 또한 이상이 없었다. 태형은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했지만 석진은 그게 되지가 않았다. 애초에 석진의 선택지에서 거절은 있을 수 없는 답안이었다. 태형이라서 더 그랬지만, 굳이 태형이 아니더라도 그랬다. 어릴 때부터 항상 선택은 석진의 몫이었고, 거절 또한 마땅히 석진의 것이었다. 괜히 심술이 났다. 원래도 태형이 8을 떠들면 석진의 2를 받아줘 완성되는 관계였지만 요즘은 태형이 8을 하면 석진은 0.5를 해 남은 1.5는 정적만이 흘렀다. 둘의 게이지에서 석진이 줄어들면 태형쪽에서 더 다가와 채워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것도 아니었다. 석진은 그것도 불만이었다. 태형은 정말 자신이 할 정도만 선을 지켰다.

마사지도 그랬다. 그 뒤로 마사지는 매일 혹은 삼일에 한 번씩 했지만 그때처럼 긴장이 흐르지 않았다. 처음 마사지를 할 때는 말하지 않았어도 둘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있었다. 그 긴장감이 섹스 텐션인지 아니면 애정의 밀고 당기기인지, 그것마저 아니면 행위 자체의 긴장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딱 한번 뿐이었다. 성의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마사지를 할 뿐, 다른 감정교류는 없었다. 포털 사이즈에서 찾아보면 부부사이의 마사지는 서로의 감정 교류를 원활하게 해 관계를 깊게 한다던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진짜 부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말이다.

회사에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석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마 전 가입한 카페에 들어갔다. 오메가들이 모인 일조의 친목 카페였다. 그중에서도 석진은 결혼한 사람들이 있는 게시판을 눌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들어왔지만 첫 페이지부터 자신과 같은 고민들이 가득했다. 임신 중 권태기, 임신 중 관계없음. 임신으로 조금 예민해진 탓도 있었지만 석진의 자존심이 무너지기 충분했다. 진짜인가? 진짜 이게 바로 권태기인가? 하지만 둘은 권태기를 느낄 것도 뭣도 없었다. 뭐라도 했어야 권태기라도 오지, 둘은 연애든 뭐든 한 게 없었다. 감정 교류는커녕 시간과 장소만 교류하는데 그게 연애는 아니잖아. 그렇게 생각하니 상황은 카페의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심각해보였다. 저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고 연애한 다음에 결혼하기라도 했지, 자신들은 하룻밤 원나잇 스탠드에서 이어진 관계였다. 그것도 그냥 히트 사이클이라는 본능에 이끌려서! 석진은 책상 앞에 무너지듯 엎드렸다. 본능. 한참 생각하던 석진이 고개를 들어 다시 포털 사이트에 검색창을 켰다. 그래, 본능으로 시작한 관계면 한번 본능으로 가보자. 석진은 검색어를 바꿔 입력했다. 페로몬 띄어 쓰고 알파 띄어 쓰고 꼬시기. 이쯤 되니 오기가 생겼다.

태형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으니 다시 회복할 방법 또한 태형으로 해야 했다. 석진은 몇 백 페이지에 이르는 검색 결과를 모두 정독했다. 이제 실전이었다. 일단 단둘이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그건 쉬웠다. 항상 석진의 집에 함께 있는 둘이었고 태형이 자고 가는 것도 일상이었으니까. 인터넷에서는 그렇다면 이미 상황은 끝났다고 했지만 둘은 이미 그것이 일상이 된지 오래라 새롭지 못했다. 석진은 거기에 하나를 더 얹기로 했다. 바로 페로몬이었다. 함께 있긴 해도 서로를 유혹하거나 관계를 유도할 일도 없었으니 항상 페로몬을 갈무리하고 있는 둘이었다. 석진은 함께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부터 미세하게 페로몬을 흘렸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눈치 못 챌 정도긴 했지만 태형은 예민하기 그지없는 우성 알파였으니 전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중간에 한번 악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렸겠지. 당황한 태형에 석진은 벌써 이긴 것 같았다. 거봐, 우리 관계에서는 내가 우위라니까. 그러나 그게 다였다.





항상 그렇듯 밥을 먹고 한 시간정도 흐르자 태형이 슬슬 마사지 준비를 했다. “할래요?” 하고 항상 석진의 의사를 묻는 태형이었다. 태형이 마사지 준비를 위해 손을 씻으러 가면 석진도 익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깨끗하게 손을 씻은 태형이 석진의 뒤로 가 앉아 그를 안았다. 꼭 맞붙은 자세였다. 그동안 그 묘한 긴장감은 없어진지 오래였는데, 오늘은 괜히 떨렸다. 석진이 웃옷을 올리자 태형의 손에 오일을 부어 손바닥을 비볐다.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로 오일 소리가 요란했다.



할게요.”



손이 석진보다 차가운 태형은 혹시라도 온도에 놀랄까 항상 먼저 말하고 시작했다. 첫날엔 영상을 따라 가슴까지 올라왔던 손이지만 그 이후로는 항상 배에만 머물렀다. 나른함에 솔솔 잠이 왔다. 배부르고 등 따신 상태로 마사지까지 받고 있으니까. 아니야, 안 돼. 석진은 자존심 회복을 위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항상 마사지를 받을 때는 두 눈을 감고 있었는데, (그러다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이렇게 눈을 뜨니 태형의 얼굴이 참 가까웠다. 고작 마사지 하나일 뿐인데 거기에 집중해 미간에 힘을 준 태형이었다. 석진은 멍하니 태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페로몬을 풀었다. 작정하고 푼 것은 아니라 강하진 않았지만 차에서의 것보다는 훨씬 진했다. 아까는 예민한 알파정도야 깨달을 정도였다면 지금은 어떤 알파가 맡아도 확신할 정도였다. 자신도 모르게 푼 페로몬에 석진도 놀랐지만 거기에 더 놀란 건 태형인 듯했다. 석진의 배를 문지르던 손이 멈췄다. 하필이면 옆구리 쪽을 만지던 손에 석진도 긴장해 도톰한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왜 그래요?”



아무렇지 않은 척, 모르는 척하고 태형을 떠보는 석진이다. 바로 바로 오는 태형의 반응이 즐거웠다. 귀엽기도 했고, 대놓고 자신을 신경 쓰고 있다는 행동과 표정이 뿌듯하기도 했다.



석진 씨, 지금.”

왜요?”



석진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고작 페로몬뿐인데, 석진의 등 뒤에 딱딱하게 닿았다. 단단히 눌러오는 것에 석진은 속으로 웃었다. 아닌 척하더니만 태형은 자신에 페로몬 하나에 달아오르고 있었다. 우월감에 뿌듯하다 생각하는 석진이었지만 사실은 안도감이 드는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니에요.”



태형의 대답에 석진이 갈무리를 할 줄 몰라 억제제로 겨우 눌렀던 10대 때처럼 날카롭게 페로몬을 흘렸다. 이제는 단단하다 못해 아프기까지 했다. 석진이 자세를 바꾸는 척하며 몸을 뒤척였다. 비스듬히 누워있어 등에 닿았던 것이 엉덩이 쪽에 닿았다. 마찬가지로 등에 닿던 것이 엉덩이로 옮겨지자 태형이 더 눈에 띄게 반응했다. 그런 태형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아졌다. 석진이 여기까지 멍석을 깔아줬는데 안 그러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조금 심각할 지도 모른다. 태형의 발기부전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아플 정도로 닿아오는 게 그건 전혀 아닐 테니, 만약 그렇다면 석진을 향한 태형의 마음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다 했어요.”

벌써요?”

그게 아니고, .”



앞만 바라보고 있던 태형이 시선을 떨궜다. 둘의 시선이 맞닿았고 얼굴은 숨결을 나눌 만큼 가까웠다. 둘은 한참동안 서로를 눈에 담았다. 이제 수순은 당연했다. 태형의 입술이 달싹이자 석진도 대답하듯 두 눈을 감았다.



이제 일어나요.”

?”

다 했으니까. 저 먼저 손만 씻을게요.”

…….”



이게 아닌데. 태형에게 기대던 석진의 몸에 힘이 빠지기 무섭게 태형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차라리 샤워할게요, 하면 혼자 손으로 처리라도 하나 싶었는데 세면대 물소리만 들렸다. 그마저도 금방 나온 태형이었다.



뭐해요. 그렇게 누워있으면 침대에 오일 묻어요.”



잔소리까지 완벽했다. 뭐가 완벽했냐면, 석진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지기에 완벽했다.

 






V x JIN

샷건웨딩 shotgun wedding
 조금씩 천천히 너에게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도 가지신 것이니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임신 2개월 만에 변했어요, 라는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대체 어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일단 전제부터 틀렸다. 사랑하지도 않았고 결혼을 하지도 않은 둘이었다. 그 다음만 맞아떨어졌는데 그렇다면 시간도 해결 못해주는 것 아닐까. 회사에서 업무는커녕 카페 글만 읽고 있는 석진이 다시 책상에 엎어졌다.



지민아.”

왜요.”

난 끝났어.”

뭘 또 끝나요.”

정말 끝났어. 12주 안에는 된다니까.”

뭐가 돼요.”

몰라, 끝났어.”



석진이 지민의 의자를 잡고 흔들었다. 덕분에 바퀴가 달린 의자에 지민이 흔들렸다. 대충 원인을 눈치 챈 지민은 석진에게 파일을 하나 넘겼다.



그럼 형이 갔다 오실래요?.”

뭔데.”

“4층 걔네 부서로 돌릴 교육확인서요.”



아마 둘의 반 동거 사실을 모르는 지민은 석진이 지금 태형을 한동안 보지 못해 이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도 그럴게, 태형은 요즘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매번 지민의 약속을 거절했다. 평일에야 그렇다 쳐도 주말까지 바빠보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도통 대답해주지 않는 태형이다.

석진은 지민이 내민 서류파일을 뚱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때 얼마 전 읽었던 댓글이 생각났다. 장소를 바꾸면 신선한 장소가 주는 설렘이 권태기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짤막한 한 줄이. 석진은 냉큼 파일을 받아들고 4층 버튼을 눌렀다. 층이 다르니 업무가 겹쳐도 전화나 메신저가 다였다.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맞대는 것은 태형의 입사 초반 때 몇 번이 다였다. 그때는 신입 티가 확 났었는데 몇 개월 만에 회사의 분위기에 녹아있었다. 안경까지 쓰고 업무에 집중한 게 조금은 멋있기도 했다.



태형 씨.”



석진이 태형의 자리로 다가가 들고 있던 파일을 내려놨다. 파티션에 가려져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던 태형이 석진의 얼굴에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여기는 왜.”



기뻐하진 못해도 반가워할 줄 알았는데 태형의 얼굴은 그저 당황만이 물들어있을 뿐이었다.



이거 주려고 왔어요.”

, 지민이가 올 줄 알았어요.”

…….”



둘 사이를 침묵이 감쌌다. 오히려 집에서보다 더 어색한 것 같았다. 석진의 기분이 추락했다. 충분히 구겨진 자존심에 석진은 오기를 부렸다. 보란 듯이 페로몬을 흘렸다.



석진 씨.”

.”

더 할 말있으세요?”

아니요.”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석진의 대답에 태형이 손목을 잡았다.



그럼 이제 돌아가세요.”



그럼 커피 한잔이라도 하실래요? 정도는 기대한 석진이었다. 하지만 정작 귓가를 울린 말은 전혀 반대의 의미였다. 지금껏 거절당하긴 했지만 이렇게 말로 확고하게 선을 그은 것은 처음이었다. 석진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도망쳤다.



* * *



서러웠다. 퇴근하고도 수트를 벗고 씻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태형에게도 외출복으로는 절대 침대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었는데, 수트를 입은 채로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내가 좋다더니, 사실은 그냥 아이 때문에 거짓말 하는 게 아닐까? 뭐가 문제인지 정말 모르겠어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한참을 이불을 차고 있었는데, 마침 타이밍이 좋게 태형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까 일을 말하려는 거 아닐까 싶었다. 회사라 그랬다고 한 마디만 해준다면 기분이 풀릴 것도 같았다. 아주, 아주 조금은. 약간의 기대감에 메시지를 확인했다.


[야근 때문에 너무 늦을 것 같아요. 오늘 못 갈 것 같으니까 냉장고에 있는 거 데워먹어요.] 

가뜩이나 홀로 돌아온 지하철에서 계속 서서와 기분도 안 좋았는데 태형의 문자 한통이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정말 야근 때문에 못 오는 걸까? 아니면. 석진은 오랜만에 지민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지민아, 오늘 김태형 야근해?]

아직 야근 중인 지민의 답장은 빨랐다.

[걔 방금 집에 갔어요.]



석진이 휴대폰을 던졌다. 침대에서 던져 액정은 괜찮았지만 마음은 전혀 괜찮지 못했다.

밥도 먹질 않았다. 냉장고에는 태형이 해놓은 음식이 있어 데우기만 하면 됐지만 입맛도 없었다. 결정적으로는 태형이 한 걸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은 더더욱 막지 않았던 김석진이었다. 누구보다 우위에 있었고 절대 타인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술이라도 취할 때까지 흠뻑 마시고 싶었는데 그것도 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다못해 카페인에 취할 수도 없었다. 석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이라도 청해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베개와 이불을 끌어안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온도의 방이었건만 너무나 춥고 서러웠다.

하지만 잠도 좋은 해답이 되질 못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자기만 했더니 배고파 새벽에 결국 눈이 떠졌다. 석진은 비몽사몽 냉장고를 향해 태형이 해놓음 음식을 꺼냈다. 새우 카레. 석진이 좋아하는 메뉴였다. 전자렌지에 데워 식탁에 앉았다. 숟가락을 들고 좋아하는 새우 카레를 먹는데 한 술 입에 넣자마자 눈물이 뚝 떨어졌다. 정말 좋아하는 건데, 정말 맛있는 건데, 서러움이 밀려왔다.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필요한 건 이게 아니였다. 정말 좋아하는 거. 석진이 휴대폰을 들었다. 잠깐 동안의 통화 연결음이 초조했다. 안 받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곧 들리는 목소리에 석진은 목 놓아 울었다. 전화를 하자마자 우는 소리가 나니 전화 반대편의 사람이 더 놀란 눈치였다. 받자마자 들린 울음에 태형은 석진 씨? 하고 반복하며 상대를 확인했다.



왜 울어요.”



왜 우냐는 말에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어디에요?”

.”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하지만 그래도 한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모든 상황이 서러웠다.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술도 그랬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클럽도 그랬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서러운 건 역시 태형이었다.

바로 온다더니 태형은 30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태형과 석진의 집은 차로 20분도 안 걸리는 위치였고, 지금은 새벽이니 이렇게 오래 걸릴 일도 아니었다. 귀찮아서 안 오는 것 아닐까? 그나마 멎었던 눈물이 다시 떨어졌다. 석진이 몸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베개가 젖어 들어갔다.



석진 씨.”



눈앞이 흐렸다. 자신의 울음소리에 묻혀 도어락 열리는 걸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어느새 방안으로 들어온 태형이 석진의 앞에 서있었다. 이제 자존심을 세울 기력이 없었다. 석진이 팔을 벌리자 태형은 몸을 숙이며 그의 앞에 앉았다. 그런데 도통 침대로 올라오지 않았다.



왜 안 올라와요.”

저 지금 회사에서 온 거라.”



아까 분명 퇴근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어디 있다 온 건지 태형도 수트 차림 이었다. 그러고 보니 석진도 그랬다. 절대 외출복으로는 침대 위에 올라가지 않는 사람이란 걸 잘 아는 태형이 의아해했다.



왜 아직도 안 갈아입었어요. 어디 갔었어요?”

퇴근했다면서요.”



태형이 먼저 물었지만 석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온 거 아니잖아요.”

회사에서 온 거예요.”

지민이가 퇴근했다고 했어요.”

잠깐 집에 USB 때문에 들렸던 것뿐이에요.”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태형이 석진의 손등을 문질렀다. 쓸데없는 다정함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왜 울어요.”

이제 내가 싫어요?”

?”



절대 묻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말이었다.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라뇨?”

나랑.”



석진이 울음에 헐떡였다.



나랑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



꽤 놀란 모양이었다. 항상 저음이었던 태형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솟아올랐다.



그날 왜 안 했어요?”

, 언제요?”

우리 처음 마사지 하던 날.”



석진의 말에 태형이 아. 하며 큰 눈동자를 굴렸다.



신경 쓰고 있었어요?”

안 쓰게 생겼어요?”



바닥에 앉아 있던 태형이 침대 위로 올라와 앉았다. 그리고 대답을 찾으려는 듯 떨군 시선이 흔들렸다.



변명거리 찾지 말고요.”

변명거리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하고 있어요.”

무슨 소리에요.”

그럼 다 일부러 한 거예요? 그 페로몬 흘리던 것도.”

…….”



태형의 물음에 석진이 아랫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려니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석진 씨가 우리 애 때문에페로몬 조절이 잘 안 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나도.”

…….”

참았던 건데.”



천천히 감정을 정리하며 말하는 태형의 얼굴이 귀까지 달아올랐다.



그럼 회사에서도 일부러 그랬던 거예요?”

아니 그건 나한테 신경도 안 쓰길래.”

나는 괜히 이상하게 소문 퍼질까봐 더 그랬던 건데.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우리 부서에 알파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고요.”



석진의 손등을 문지르던 태형의 손이 그대로 깍지를 꼈다.



석진 씨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어요.”

괜찮대요.”

?”

그렇게 이것저것 알아보는 것 같더니만 정작 중요한 건 안 찾아봤어요? 다들 안정되면 하는 게 오히려 좋다고 하잖아요.”

. 미안해요.”

아니, 내가 지금 우리 애한테 좋다니까 하자는 게 아니고.”

알아요, 무슨 말인지.”



태형이 석진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너무 잘 알겠어요.”



한참 석진의 어깨에서 생각을 정리하던 태형이 고개를 틀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단단한 팔이 석진을 더 깊게 안았다. 그의 페로몬을 흠뻑 마시는 것처럼 숨을 들이켰다.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둘의 입술이 맞닿았다. 그저 맞닿을 뿐이었지만 심장은 크게 뛰었다. 아마도 태형에게도 들릴 것 같았다. 두 입술은 맞닿는 것이 전부였다. 질척이는 혀도, 부드러운 점막도 없었지만 어떤 것보다도 소중했다. 첫 키스 같았다. 지금까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있잖아요, 석진 씨.”

.”

있잖아요.”



태형이 한참을 망설였다. 기다림이 조금 지쳐질 때 쯤 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결혼 할래요?”



입술과 코끝이 맞닿은 채로 태형이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은 아니었지만 기대하지도 않았던 말이라, 석진의 귀 끝이 뜨거웠다.



생각해볼게요.”



마주한 대답은 아주 긍정의 뜻은 아니었지만 태형은 이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석진의 대답에 태형이 수트 재킷 안에서 잠깐 뭔가를 찾는 듯하더니, 곧 작은 상자를 꺼냈다. 상자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석진은 그만 혀를 깨물 뻔 했다. 상자에서 반지를 뺀 태형이 석진의 왼손 약지에 깊게 반지를 끼웠다.



언제 준비했어요?”

언젠가 건네줄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서 항상 가지고 다녔어요.”

. 석진 씨가 스타벅스로 불러냈던 날?”



태형이 반지를 낀 석진의 약지 위에 입을 맞췄다.



그럼 할까요.”



이것도, 결혼도. 둘은 다시 입술을 맞췄다. 아까보다 깊게, 질척이게, 서로의 숨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내가 보일러를 올렸던가?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알게 뭐야, 이제 봄인데. 석진이 눈을 감아 태형을 더 깊게 안았다.


/샷건웨딩, .

 

 





 

많이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아하던 썰이라 이렇게 이을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제가 쓴 것중 제일 달달한 내용인 거같아요. 이제 수정하고 퇴고하고.. 마무리가 남았네요. 원래 이번편에는 조금씩천천히너에게를 넣고싶었는데 공식 뮤비도 피아노커버도 찾지못해 실패ㅠㅠ 위에 문구도 해당 노래의 가사에요! 혹시 가능하시다면 어플로 찾아서 들어봐주세요.. 정말 좋아하는 노래거든요...ㅎㅎ

그럼 이제 소장본에 들어갈 외전 작업하러..♥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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