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알고 난 뒤로 태형은 출근길에 석진을 매일 데리러왔다처음엔 자신도 차있다고 거절하려 했지만 아침에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그건 좋았다아침엔 태형과 함께 출근하고 퇴근은 시외버스를 이용했다아침 시간엔 길이 너무 막혀서 이용할 수 없었지만 퇴근길에는 귀가시간이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니 나쁘지 않았다.

태형과 함께하는 카풀을 한 지 2주정도 됐을까갑작스런 버스 회사의 파업이 터졌다버스는 괜찮지만 30분은 내내 서서올 퇴근길의 지옥철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됐지만 같이 하는 출근길에 꽤 익숙해진 때였다운전대를 잡지 않는 것에 익숙해진 것인지태형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큰일이다.’

왜요?’



운전을 하던 태형이 물어왔다.



버스 회사 파업해서 퇴근 때 전철 타야할 것 같아서요.’

그럼 같이 퇴근해요.’

오늘 야근할 지도 모르는데.’

저도 그래요같이 가요.’



버스 회사의 파업은 사흘정도 더 이어졌다덕분에 석진은 태형의 차로 출퇴근을 하게 됐고 파업이 끝나고 나서도 습관처럼 함께 출퇴근을 했다하지만 그건 둘 다 야근이 있을 때 일이고석진이 먼저 퇴근하는 날이면 이렇게 야근을 마친 태형이 석진의 집으로 찾아왔다귀찮아석진은 오늘도 제 집 앞에서 서있는 태형을 보며 생각했다.



왜 왔어요.”

야식 먹자고요.”



석진에대해 아주 잘 아는 태형이었다항상 거절하지 않을 그럴 듯한 이유를 갔다댔다.



육회 좋아하죠.”



그것도 절대 거절할 수 없는 메뉴를 가지고.



이거 방금 광장시장에서 사온 거예요.”

어디 건데요.”

육회자매요.”

들어와요.”



그리고 결코 거절할 수 없는 곳이었다그다지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은근 맛집 지도란 말이야석진은 태형을 식탁으로 앉혔다태형이 사온 육회를 꺼내고 뭐 마실 거냐고 묻자 태형은 콜라를 선택했다.



병원은 가봤어요?”

내일 가보려고요.”

같이 갈까요?”

아니요.”



대답에 실망한 듯 태형이 고개를 떨궜다석진은 이런 태형의 반응이 조금 신기했다항상 무표정으로 뭔 말을 해도 예아니요만 대답하던 남자가 이렇게 감정표현이 풍부한 남자였나 싶었다석진은 태형이 사온 육회를 먹으며 이제 슬슬 꺼낼 주제에 대해 생각했다오늘은 무슨 말을 하려나귀찮기도 했지만 아-주 조금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런데요석진 씨.”

그래요듣고 있어요.”

아무리 시대가 100세 시대니 장수사회니 해도 그건 약물이나 의학적 시술 또는 수술로 생명을 연장하는 거래요그러니까 신체 나이는 그대로인데 의학이 발전해서 좀 더 연장을 시키는 거죠.”

그래서요.”

그러니까 연장 이전의 신체 나이는 그대로라 서른다섯이 넘어가면 노산으로 몸에 부담이 크대요.”

그런데요.”

그러니까젊으면 젊을 때 낳는 게 아이에게 좋대요최고로 건강한 유전자를 남기는 거죠지금 우리처럼요특히 정자는 그때그때 생성되는 거라 최소 3개월 전에는 몸 관리를 해야지만 한다던데저는 술도 담배도 안 하거든요그리고 매일 꾸준하게 운동도 하고 있고요.”

그렇군요.”

아니 이게 아닌데.”



태형은 젓가락만 손에 쥐고 육회를 먹기는커녕 콜라도 마시지 않고 사전에 달달 외우기라도 한 것처럼 줄줄 읊었다요즘 태형은 매일 이랬다일단 먹을 것그것도 정말 석진이 좋아하고 맛있는 걸 사와서 상황을 만들고 이런 저런 얘기로 설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 말했던 거 말인데요.”

그건 됐다고 했잖아요.”

그치만 잘 생각해봐요.”



무슨 얘기인지 뻔한 레파토리에 석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둘이 같이 살면 집세도 절약되잖아요.”

아니 내가 왜 같이 사냐고요.”

석진 씨는 자취한지 몇 년차예요?”

“6개월이요.”

저는 5년차거든요.”



태형이 뿌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뭐요선배라고 불러줘요?”

그게 아니라 저 진-짜 잘하거든요빨래랑 청소랑 이런 거 저런 거 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하루는 태형이 사온 야식으로 배부르고 등 따시니 알아서 있다 가라고 먼저 침대에 잠든 적이 있었다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화장실에 간 석진은 오버를 조금 보태서 그만 실명할 뻔했다귀찮아서 그대로 방치해둔 화장실 구석에 있는 곰팡이 청소와 타일의 실리콘 때가 모두 벗겨져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놀라서 어떻게 된 거냐 카톡을 하니 그냥요.’ 하는 답신 한 줄만 왔더랬다.



그건 그러네요편하겠네.”



처음으로 오는 긍정적인 반응에 태형의 두 눈이 그때의 화장실 바닥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이제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질 거 아니에요그럼 새벽에 누가 가겠어요석진 씨가 혼자 나갈 거예요?”

배달의 민족.”



세상은 21세기스마트 코리아였다.






V x JIN
샷건웨딩 shotgun wedding
04. 사라져 아니 사라지지 마

 



알람보다 먼저 울린 카톡 소리에 눈이 떠졌다석진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손만 뻗어 머리맡에 올려둔 휴대폰을 잡았다시력이 나빠 안경이나 렌즈 없이는 잘 보이지 않은 석진은 부운 눈에 힘을 줘가며 메시지를 확인했다오랜만에 쓴 연차에 오전 내내 잘 생각이었던 늦잠을 방해한 건 태형이었다.



[오늘 병원 혼자 가요?]



피검사를 통해 간단히 확인 검사는 했지만 그 이후로 병원에 간 적이 없어 어떤 선택을 하던 한 번 더 가긴 가야할 것 같아 연차를 쓴 석진이었다어제 퇴근 하는 차에서 혼잣말하듯 병원 얘기를 꺼냈는데그새 기억한 태형의 문자였다그럼 혼자 가지누구랑 가냐석진은 속으로 답장을 보냈다.

다시 잠에서 깼을 땐 해가 중천이었다씻기도 귀찮아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썼다그리고 그때 전화가 울렸다역시나 태형이었다지금 나가려는 걸 어떻게 알기라도 한 건지 타이밍도 좋았다혹시 어디 카메라라도 설치 해놓은 거 아니야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왜 답장이 없어요.”

못 봤어요.”

어디 아픈 줄 알았어요.”

어제 건강한 거 봤잖아요.”

오늘은 아플 수 있잖아요.”



낯간지러운 관심에 석진은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뭐라고 물어 봤는데요.”

저 오후반차 썼어요.”

왜요.”



그의 의도가 너무 빤해 석진은 어미를 내렸다절대 의문문이 아니었다그저 너가 거길 왜 가냐 정도의 의미였다.



그냥 혼자 갔다 올 거예요별 것도 아니고.”



석진의 말에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삐진 걸까아니면 화난 걸까표정을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그리고 거기에 짜증이 났다사실 태형이 삐지든 화나든 석진과는 그닥 상관이 없었다그냥 끊자고 하면 끝날 인인데 태형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게 여겨지다니그에게 하나 둘 감정이 써지는 제가 짜증이 났다.



집 비밀번호 알려줄 수 있어요?”

왜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석진이 놀란 토끼처럼 말꼬리를 올렸다.



갔다 오면 같이 밥 먹고 싶어서장보고 가서 준비하고 있으려고요.”

…….”



다행히 삐지진 않았나보다근데 이걸 다행이라 여기고 있다니갑자기 태형의 감정에 같이 휩쓸리는 자신이 낯설었다고작 몇 주 새에 태형에게 길들여진 기분이 들었다. ‘됐어요.’ 라는 말이 입안에 맴돌았다내뱉기만 하면 되는데자꾸만 혀끝에 걸쳐졌다.



카톡으로 보낼게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찹쌀 채운 백숙이요.”

백숙이요?”

먹고 싶은 거 말하라면서요.”

알겠어요.”



태형이 침울해져 전화를 끊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태형에게 이끌려가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는데 다시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았다.

사실 석진은 알파라는 인종을 좋아하지 않았다알파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 본능이니 운명이니 하는 것이 싫었다결정적으로 싫어진 이유는 좋아하던 베타에게 넌 오메가잖아.”하는 대답을 받았을 때였다너는 성격이 별로야 혹은 외모가 별로야 하는 이유라면 충분히 받아들였을 텐데단순히 오메가라 안 된다고 거절당하니 수치스러웠다마치 너는 지금 착각하고 있어내가 아무리 좋아도 알파가 나타나면 그 페로몬에 홀릴 거잖아.’라며 그동안 좋아했던 마음이 모두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오메가이고 싶어서 오메가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고 좋아하는 마음 또한 진짜였는데 너무 억울했다마음이 부정당한다고 생각해 더욱 알파는 만나지 않았다페로몬에 감정이 조정당하는 게 싫었다가끔 알파에게 고백을 받더라도 내가 좋은 게 아니잖아오메가라 좋은 거지.’하며 거절하던 석진이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굳이 결혼을 하지 않아도베타와 달리 인종 수가 적은 오메가와 알파는 아이가 생긴다면 혼인여부에 불문하고 낳는 것이 통상적이었다사회에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고베타보다 타고난 조건 또한 우월했기에 오히려 더 유도하기도 했다때문에 알파와 오메가 중에는 미혼모나 미혼부도 많았다그렇게 교육받고 자랐고또 그걸 본능으로 생각하는 인종이니 사회적인 억압이나 색안경 따위도 없었다오히려 일반적인 알파나 오메가의 입장에서 지금의 석진은 조금 유별나게 보일지도 모른다오메가와 알파의 만남은 운명이었다세계가 만들어 지고 난 이후부터 그것이 정설이었다운명을 거부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석진은 운명이라는 건 자신이 원치 않았던 일을 합리화할 때나 쓰는 말이라 생각했다운명이 아니라 실수라고 상황을 비틀었다그래서 더욱 거부했다그가 알파니까그게 본능이니까 하는 건 너무나 스스로가 짐승처럼 느껴졌다태형과 있다면 자신의 감정이 모두 부정당할 것 같았다이성적인 사고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모두 역시나.’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 같았다본능에 가려져 마음이 왜곡 당하는 것이 싫었다어쩌면 두려울 지도 모른다그렇기에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태형과 있으면 자꾸만 그에게 끌려가는 기분이 들었다우스운 것은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이런 저런 잡생각에 사로잡혀 20분이면 도착할 병원을 30분이 넘겨서야 겨우 도착한 석진이다병원에 도착하자 당연한 수순처럼 초음파 검사가 이뤄졌다베드에 눕자 차가운 젤이 배에 발라졌다저번에 피검사를 할 때는 아무 느낌이 안 났는데 이렇게 젤이 배 위에 발려지고 모니터에 화면이 들어오자 실감이 났다긴장감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이런 기분도 오랜만이라 낯설었다하지만 역시 나쁘지 않았다.



.”



석진은 받아쓰기 검사를 받던 그때처럼 의사의 말 한마디를 조용히 기다렸다.



아기집이 두 개네요난황도 두 개고요.”

?”

조금 더 지켜봐야할 것 같지만이란성 쌍둥이 같네요축하드립니다.”



의사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석진에게 설명을 했다하나도 아니고 둘이라니갑작스런 상황에 석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젊으면 젊을 때 낳는 게 아이에게 좋대요지금 우리처럼요.’ 그때는 태형의 말이 자신을 구슬리려고 그냥 한 말이라 생각했는데진짜 그렇긴 그렀나보다며 태형이 없는 곳에서 태형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지만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음에 오시면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같이 오세요.”



별 것 아닌 인사치례에 석진의 대답은 한참 걸렸다그 뒤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어느새 검사는 끝나고 의사 옆에 있던 간호사가 석진의 배에 젤을 닦아주며 어색한 공기를 달래듯 말을 건넸다.



베타 부부사이에선 쌍둥이가 흔해도 오메가와 알파사이에선 흔하지 않은데두 분이 정말 운명이신가보네요.”



일종의 립 서비스겠지만 석진은 의례적인 말을 되짚었다운명아니석진은 선택한 것이다알파의 페로몬이 아닌 김태형을.

갑작스런 상황에 넋이 나가 어떻게 집으로 온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신 차라니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 병원 하나 갔다 왔을 뿐인데 너무나 피곤하고배고팠다빨리 뭐라도 먹고 한숨 더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어락을 열던 석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분명 태형이 집에 있을 텐데벨을 눌러야할지 아니면 그냥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할지 망설여졌다뻔히 안에 사람이 있는걸 아는데 비밀번호를 누르기도 그랬고 자신의 집인데 손님처럼 벨을 눌리기도 그랬다어떡하지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석진이었다이런 고민하는 스스로가 우스웠다그렇게 신경 안 쓴다고 하더니 태형보다 더 태형을 신경 쓰는 석진이었다순수하게 상황이 우스워 웃음이 났다그러고 보니 이렇게 웃는 것도 꽤 오랜만이었다또 누군가 때문에 이런 고민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결정을 내린 석진은 초인종을 눌렀다생각지도 못한 초인종에 석진보다 안에 있는 사람이 더 놀랐는지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현관이 열렸다태형이 있는 건 당연히 알았지만 차림새는 생각하지 못했던 탓에 석진은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단정하게 빗어진 머리에 목까지 꽉 조인 넥타이수트 팬츠 그리고 그 위에 노란색 병아리 앞치마.



어디서 난 앞치마래.”

이거.”



그제야 수트에 앞치마를 메고 있는 자신을 내려다본 태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오기 전에 벗으려고 했는데갑자기 초인종이 눌려서……저희 집에서 가지고 왔어요백숙 먹고 싶다고 했잖아요압력솥이 없을 것 같아서 들렸다가 나오면서 챙겨온 건데이거 그냥 세일하는 거제일 싼 거로 산 거라 디자인이 이렇다고요.”



민망한지 태형의 말이 길었다변명하듯 입술이 쫑알대는 게 정말 병아리 같았다.



집에 압력솥도 있어요?”

전기밥솥 사기전에 잠깐 쓰던 거예요.”



석진은 자연스럽게 대화의 방향을 바꿨다그러자 태형의 얼굴에 민망함이 좀 가시어졌다이렇게 얼굴에 금방 드러나는 남자가 어떻게 그렇게 무뚝뚝했을까 신기했다.

태형은 석진을 식탁에 앉혔다커다란 대접에 담겨 나온 백숙은 정말 파는 것처럼 보였다안에는 석진이 말한 대로 찹쌀이 가득 들어있었다삶기도 잘 삶았는지 닭다리가 젓가락에 부드럽게 떨어졌다제일 좋아하는 다리부분을 뜯어 소금에 찍었다푹 익은 살점이 녹아내렸다국물도 맛있었다아마 저 압력솥과 병아리 앞치마를 못 봤다면 어디서 사온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안 먹어요?”



그런데 정작 태형은 먹지 않고 있었다석진이 다시 한 점을 소금에 찍으며 물었다만든 사람은 먹지도 않는데 혼자 앉아 먹고 있는 게 조금 민망했다그리고 옆에 앉아 먹고 있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도.



저 배불러요만들면서 하도 주워 먹었더니.”



백숙을 만들면서 뭘 주워 먹었다는 걸까생닭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태형의 배속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멀리서 육회까지 사온 태형이었는데 정작 먹은 건 석진 혼자였다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싶었다아니 사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안 먹으면 내가 다 먹으면 되지 뭐오히려 더 잘됐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은 태형이 먹지 않는 게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안 좋아해요저 입맛이 은근 어린애 입맛이라삶은 거보다 튀긴 거 좋아해서.”

그럼 육회도 안 좋아하겠네요.”

.”

좋아하지도 않는 걸 사와서 같이 야식먹자고 한 거예요?”

석진 씨가 좋아하잖아요특히 거기 꺼 좋아한다고.”

내가 말해줬었어요?”

아뇨사실지민이한테 물어봤어요석진 씨 뭐 좋아하냐고.”



태형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다행이었다하마터면 분명 달아올라 있을 얼굴을 들킬 뻔 했다태형은 설거지 하겠으니 마저 드시라며 자리를 일어났다아직도 벗지 않은 병아리 앞치마의 뒤에는 예쁘게 리본이 묶어져있었다큰 손으로 저 작은 리본을 묶었을 생각하니조금은……석진이 뒤돌아 설거지하고 있는 태형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나한테 직접 물어봐요.”



어쩌면 물소리에 묻힐지도 모를 만큼 작았지만태형은 끄덕였다.

 



* * *

 



밥만 같이 먹자더니태형은 정말 밥만 같이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사실 석진 혼자 먹은 거라 저녁은 태형이 좋아하는 걸 같이 먹을 생각이었는데 자기가 먼저 간다니 잡을 수도 없었다잡을 수야 있었지만태형을 보내고 배도 부르겠다병원 일이 꽤나 피곤했던지라 금세 잠들었다.

푹 잠들었다 생각한 것도 잠시 석진은 잠을 뒤척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어나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새벽 3잠깐 자고 저녁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낮잠이 아니라 아예 푹 자버린 석진이다저녁도 먹지 않고 잤더니 허기가 졌다잠깐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진 석진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지금은 밥이 먹고 싶지 않았다.

달게 자던 석진이 일어난 이유는 다름 아닌 딸기 때문이었다꿈에 병아리 앞치마를 입은 딸기가 뛰어다녔는데 그 때문인지 밥보다도 딸기가 먹고 싶어졌다하지만 시간은 새벽3과일을 파는 곳이 마땅치가 않았다바나나 정도야 편의점에서 팔기도 하지만 새벽에 딸기는 찾기 어려웠다하지만 쉽게 포기가 안됐다포기하고 다시 자려고 하는데 자꾸만 입안에 딸기 맛이 돌았다아무래도 안 되겠다생선회도 커피도 배달되는 시대인데 과일 배달하는 곳도 있지 않을까스마트 폰을 켜 배달의 민족 어플을 뒤지던 그때며칠 전 태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제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질 거 아니에요그럼 새벽에 누가 가겠어요석진 씨가 혼자 나갈 거예요?’

사실 나간다면 혼자 나가도 되지만이미 통화 연결음은 울리고 있었다.



자요?”

안자요.”



시간이 시간인 지라 안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화는 금방 받아졌다하지만 안 잔다는 말은 누가 들어도 거짓말이었다태형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배는 낮았다.



딸기.”

?”

딸기가 먹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

그냥아니에요.”



수화기 너머로 말이 없다아마 시간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어쩌면 이 시간에 딸기를 어디서 구하냐고 속으로 욕할 지도 모를 일이었다.



금방 갈게요.”




* * *


 

금방 간다던 대답은 짧았지만그 이후로 태형은 한 시간이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못 구한건지다시 잠든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커피 물까지 올려놓은 석진은 무릎을 안은 채 휴대폰이 울리기만을 기다렸다연락이라도 한번 해봐야 하는 걸까그렇지만 전화를 하면 꼭 보채는 것 같아 할 수가 없었다역시 그냥 혼자 나갈 걸태형이 가는 곳이면 석진도 갈 수 있었다괜한 일을 시킨 것 같아 조금 미안함이 몰려올 때초인종이 울렸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이태형만 기다리고 있던 게 조금 티 났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석진은 초인종 소리가 끊기기 전에 문을 열었다.



딸기 사왔어요.”



해가 떴을 때 이 집을 나섰던 태형은달이 뜨고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왔다현관문을 열자 검정 봉투를 들고 꽤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석진을 반겼다볼이 새벽바람에 얼어 꼭 딸기 같았다딸기를 사 오랬더니 자기가 딸기가 돼서 온 태형이었다.

석진은 꿈에 나타난 딸기가 누군지 깨달았다병아리 앞치마의 딸기석진은 현관을 잡은 채로 주저앉아 새벽의 빌라가 떠나가도록 웃었다눈꼬리에 눈물까지 매달고 웃는 석진에 당황한 태형이 왜 그러냐며 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그래요무슨 일 있어요?”



큰일이었다너무 귀여웠다.








너무 졸려서 수정 부분을 못찾겠어요..일단 올리고 잘래요...

브금은 정식 음원은 아니고 아ㄹ1아네1집에 들어갈뻔한 노래였다고 해요 데모 테이프같은건데.. 

노래 너무 귀여워요.. 가사도 너무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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